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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오피스텔 발코니 설치기준 가이드라인 폐지(feat. 괴물의 탄생, 오피스텔)

by ARCHITECT J’s NOTES 2025. 4. 4.

서울시가 오피스텔 발코니 설치기준 가이드라인을 폐지하였습니다. 2025년 3월 19일, '민간건축의 활성화 유도·건축계획 자율성 확대' 그리고 '실수요자의 주거 편의성 향상'이라는 명목하에,  제정된지 1년도 안 되서 말이죠.  

 

2025년 3월 19일 폐지된 기존 가이드라인

 

하지만 건축사로서, 저는 이 일련의 과정을 너무나 거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변화가 아니라, 우리 도시의 건축 문화와 주거 환경의 본질은 항상 뒷전인 듯한 정책기조 때문입니다.

 

발코니, 그 본래의 의미는 어디에? 그리고 오피스텔은... 대체 왜?

발코니는 단순한 서비스 면적이 아닙니다. 건축물의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완충 공간이자, 거주자에게 휴식과 여유를 제공하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 발코니는 불법 확장이 만연했고, 결국 정부는 2005년 발코니 확장을 합법화해버렸죠. 발코니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고, 그저 '넓어진 실내 공간'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더 이상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거나 화초를 가꾸는 공간이 아닌, 벽과 창호로 막힌 또 하나의 방이 되어버린 것이죠.

건축사로서, 오피스텔을 바라보는 제 시선은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법적인 기형성에 대한 깊은 우려로 가득합니다. 이 공간은 건축법이라는 틀 안에서 만들어진 괴물과도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오피스텔은 건축법 시행령에 따라 '업무시설'로 분류됩니다. 이 기형적인 법적 지위가 오피스텔을 '주거'와 '업무'라는 두 가지 모호한 영역에 걸쳐 놓았다는 점입니다. 건축법상 업무시설이지만, 실제로는 주거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기형적인 법적 지위가 오피스텔을 '주거'와 '업무'라는 두 가지 모호한 영역에 걸쳐 놓았습니다. '준주택'이라는 이상한 감투를 쓰고 말이죠. 결국 법과 현실의 괴리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주택법·청약 규제 피하려고 개발된 오피스텔에 대해 정부는 제대로 된 규제는 커녕 시장논리에 따라 법규를 이리저리 손보기에 급급했죠. 그렇게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오피스텔(Officetell)은 아파트를 잇는 대표적인 투자상품이 되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발코니의 가치를 재발견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나만의 전용 외부 공간'의 소중함을 절감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2020년 '서울특별시 주택 외 발코니 설치기준'을 마련하며, 오피스텔에도 '외기에 개방된' 발코니 설치를 허용하는 듯했습니다. 당시 이 정책은 주거 환경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그것도 2025년 3월 19일을 기점으로 서울시는 오피스텔 발코니 설치기준을 폐지해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분양성을 극대화한, 그야말로 '괴물 오피스텔'의 등장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2005년 이전의 아파트와 닮은 모습으로 말입니다.

창호설치는 허용하지만 '확장은 불허'한다고?
고양이한테 이미 생선을 맡겨버렸잖아요.

 

결국 분양성을 높이기 위해, 법적 모호성을 그대로 둔 채 또 한 번의 편법적 변화를 허용한 것이죠. 이제 건설사들은 발코니 공간을 어떻게든 실내로 포함시키려 할 것입니다. '확장은 불허'한다고 명시해도, 결국엔 입주 후 개별 확장이 일상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규제 철폐'라는 명목 아래 발코니 설치기준을 폐지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의 편법적인 건축 문화를 더욱 조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규제 철폐', 그 허울 좋은 포장

저는 이번 정책이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규제 퇴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발코니는 단순한 '서비스 면적'이 아닙니다. 발코니는 거주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 확장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 환경의 질적 향상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에 맞춰 또 한 번 법을 변칙적으로 운영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축 문화는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언제까지 건설사들의 이익에 휘둘려 공간 효율성만 추구하는 건축 문화를 답습해야 합니까? 건설경기 부양? 좋습니다. 그런데 방법이 정말 이런 것 밖에 없나요? 이제는 발코니의 본래 의미를 되찾고, 진정으로 인간 중심의 건축 공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제는 진정한 주거 공간의 질을 고민해야 할 때

이번 규제 완화를 계기로, 우리는 발코니를 비롯한 건축 공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히 이어가야 합니다. 주거 공간은 단순히 면적을 최대한 넓히는 것이 아니라, 거주자의 삶을 더 풍요롭고 쾌적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발코니'라는 공간이 단순한 부가적 옵션이 아니라, 우리 도시와 거주자의 삶을 연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다시금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는 건설사와 정부가 아닌, 실제 거주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